|
|
|
스바니야서
땅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서 언 스바니야 에언자는 자기 나라 유다를 놓고 당시 강대국들이 맞겨루던 때에 살고 활동했다. 나라의 여론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이집트의 영향 아래 있으려 했고, 다른 쪽은 아시리아의 영향 아래 있으려 했다. 오랜 기간, 므나쎄와 아몬의 통치 시대에, 아시리아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런 판국에 궁중 대신들이 아시리아에 등을 돌림으로써 상황을 이집트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바꾸려 하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경제적으로 영향력이 많은 시민들이 반발하면서 아직 나이가 어린 요시야를 왕좌에 앉혔기 때문이다. 뒤에 가서, 이 왕은 대개혁을 추진하지만, 상황은 전과 똑같이 돌아가고 만다. 즉 아시리아에게 좋은 것이, 심지어 옷 입는 모양새까지, 유다에게도 좋았다(1,8).
이때, 주전 640-630년 사이에 스바니야가 등장한다. 스바니야는 이상과 같은 모든 상황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할지를 보여 준다(1,2-18). 주님의 날은 본질적으로 세계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변화이자 우상을 숭배하던 시대의 종말이다. 예언자가 보기에, 우상숭배란 비단 외국의 신들만이 아니라, 강대국과 돈과 권력을 절대화하는 짓이다. 이 우상은 다른 나라들에도, 예루살렘 도시에도, 궁중에도, 성전에도, 도시의 여러 구역에도 있다(2,4―3,8). 스바니야가 하느님의 분노를 피할 수 있다고 보는 유일한 구원 가능성은 땅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2,3), 즉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사람들, 참되신 절대자에게 의지하면서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있다. 땅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추진해 가기 위하여 ‘남은 사람들’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주님의 날을 파괴가 아닌 기쁨과 회복의 날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3,9-20).
-출처: 21세기 해설판 성경-
|
|
|

본당의 역사
게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