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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하느님의 거룩하심
서 언
이사야서라는 이름을 가진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39장은 이사야라고 부르는 예언자의 전언을 담고 있다. 그의 중심 집념은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시다.” 또는 “오직 하느님만이 절대자시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있다. 이 사실은 사람들의 실천이 우상숭배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중요하다. 소용돌이치는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이사야는 외세들과 동맹을 맺는 것을 단죄하면서, 정의를 최고 가치로 삼으시는 하느님과 당신 계획에 충실해야만 나라가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기초한 영성이 이사야 예언자로 하여금 사회 속에 들어 있는 우상들과 싸우는 정치적인 믿음을 갖도록 이끌어 준다. 이사야는 또한 임마누엘에 대해서도 말한다(7,14). 신약성경은 이 임마누엘을 당신 백성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본다.
40―55장은 바빌로니아 귀양살이 동안에 이름 없는 예언자가 썼다. 이 예언자는 희망과 위로의 전언을 제시한다. 우리는 이 예언자를 둘째 이사야라고 부른다. 둘째 이사야는 귀양살이가 끝나는 것을 새로운 ‘이집트 탈출’로 본다. 첫 번째 ‘이집트 탈출’에서처럼, 이 새로운 ‘이집트 탈출’에서도 주님께서는 새로운 해방의 영도자와 보증이 되실 것이다. 이 예언자는 회개했지만 아직도 억눌리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을 ‘주님의 종’이라고 부른다. 신약성경은 이 칭호를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고통과 죽임을 당하신 올바른 분 예수님께 붙인다. 회개하고 자유를 얻은 다음, 공동체는 모든 백성을 참된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는 선교적인 공동체, 빛을 내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56―66장은 셋째 이사야라고 부르는 어떤 예언자가 쓴 것으로 본다. 이 예언자는 귀양살이에서 돌아와 흩어졌던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다시 뭉친 공동체에게 자극을 주고 용기를 불어넣은 신탁들의 묶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다시 생기기 시작하는 잘못을 고발하고, 어떤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해 필요한 참된 단식인가를 보여 준다(58,1-12).
첫째 이사야서의 서언(이사1―39) 이사 1―39장을 이 책의 실제 순서에 맞추어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예언자들의 신탁들을 각기 선포된 역사의 맥락 안에 자리매기고 싶을 때 그렇다. 그것은 여러 편집자들이 예언자 활동의 연대 순서에 따르지 않고, 알아듣기가 늘 쉽지만은 않은 각기 다른 기준에 맞춰 자기네 신탁들을 묶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귀양살이 동안에 또는 귀양살이 이후에 쓴 것으로서 편집자들이 이사야의 전언을 현실화하려는 집념으로 끼워 넣은 대목들도 만나게 된다. 이사야 예언서를 맥락에 맞추어 쉽게 해석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사야가 활동한 연대기를 보여 줌으로써 어떤 신탁들이 그가 활동한 어떤 시기에 속하는지 가려 보기로 시도할 것이다.
첫 번째 시기: 요탐의 통치 기간(주전 740-734년) 중동 지방의 역사에서 주전 8세기에 가장 두드러진 국제 사건은 아시리아라는 강력한 제국의 등장이다. 티글랏 필에세르가 왕위에 오르면서, 이 제국은 중동 지방 다른 나라들의 평온함을 깨뜨리기 시작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다 왕국은 커다란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독립을 누리고 있었으며, 아시리아가 자기네 땅을 넓혀 가는 정책이 아직 유다 왕국에까지는 미치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것 같았다. ‘번영 및 평화’와 아울러 종교 활동이 활발하여 여러 성소에서는 대축제를 지내고 화려하고 성대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은 사회질서에서 겉모습과는 사뭇 다른 상황, 즉 불의, 재판관들의 방종, 당국자들의 부정부패, 대지주들과 큰 상인들의 탐욕, 지배자들의 억압을 감추고 있었다. 요담의 통치 말기에는 불의한 나라 안 상황에 어려운 나라 밖 상황까지 겹쳤다. 아시리아가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을 자기에게 종속된 국가로 만들려고 압력을 넣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사 1―5장을, 적어도 후기 편집자들이 덧붙인 몇몇 신탁들을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첫 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신탁들로서는 1,10-20; 1,21-26; 2,6-21; 3,1-15; 3,16―4,1; 5,1-7; 5,8-25; 5,26-30이 있고, 10,1-4는 요담의 통치 말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 시기: 아하즈의 통치 기간(주전 734-727년) 이 시기에 이사야가 벌인 활동을 이해하려면, 이른바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에 관하여 어느 정도 아는 일이 중요하다. 아람 왕국(시리아 왕국이라고도 불렀으며 그 수도는 다마스쿠스였다.)과 이스라엘 왕국(에프라임 왕국이라고도 불렀으며 그 수도는 사마리아였다.)은 동맹을 맺고 있었다. 아람 왕 르친과 이스라엘 왕 페카(=르말랴의 아들)는 아시리아의 지배를 거절하면서 힘을 합쳐 그 진격에 맞서고 있었다. 유다 왕 요탐은 그 동맹에 동참하라는 초대를 받고서도 그 양측에 의한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하여 중립적인 자세를 지켰다. 요탐이 죽자 그의 아들 아하즈가 왕위에 오른다. 아하즈 역시 그 동맹에 동참하기를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시리아-에프라임과 힘을 합친 자에게 왕좌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아하즈는 르친과 페카의 압력에 무릎을 꿇느냐, 아니면 시리아의 보호를 청해야 하느냐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 같은 국제 상황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다시금 활동을 시작한다. 두 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신탁들로는 7,1-17; 7,18-25; 8,1-4; 8,5-8; 8,9-10; 8,11-15; 8,16-20; 9,7-20; 17,1-11을 들 수 있다.
세 번째 시기: 히즈키야가 어릴 적에 통치한 기간(727-715년) 아하즈가 죽자, 그의 아들 히즈키야가 왕위를 이어받지만, 나이가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왕이 어른이 될 때까지 섭정이 대신 다스렸다. 이 사이에 아시리아 왕 티글랏 필에세르 3세도 죽고 살만에세르 5세가 왕위를 잇는다. 이스라엘 왕국과 아람 왕국의 동맹은 팔레스타인을 정벌하기 위하여 군사력을 동원한 아시리아인에 의하여 깨진다. 세 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신탁들로는 14,28-32; 18,1-7; 20,1-6; 28,1-4; 28,7-13; 28,14-22; 30,8-17을 들 수 있다.
네 번째 시기: 히즈키야가 어른이 된 다음 통치한 기간(주전 714-698년) 유다 왕국은 20년 동안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주전 714년에 열여덟 살이 된 히즈키야는 실제로 통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백성의 압력을 받은 히즈키야는, 아시리아의 기분을 상해 가면서도, 종교 내지 정치 개혁을 단행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다른 외세들(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은 그 개혁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원조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아시리아는 자기에게 조공을 바치는 속국을 잃고 싶지 않아서 유다 국경까지 쳐들어가겠다고 위협한다. 히즈키야는 주후 705년까지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친다. 그러나 유다 왕국은 아시리아의 지배를 벗어나려고 새롭게 꾀하다가, 아시리아의 황제 산헤립의 분노를 사게 된다. 그는 자기 군대로 유다 왕국으로 쳐들어와 도시들을 정복하고 예루살렘 가까이까지 온다. 이집트의 원조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수도 예루살렘만이 아시리아 군대로 하여금 물러가게 한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적군의 손에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네 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신탁들로는 1,4-9; 10,5-16; 10,27ㄴ-34; 14,24-27; 28,23-29; 29; 30,1-7; 30,27-33; 31,1-9; 32,1-8; 32,9-14; 33장을 들 수 있다.
-출처: 21세기 해설판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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