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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서
사회불의에 대항하여
서 언 그리스도 이전 8세기 중엽 760년에 아모스라 부르는 농사꾼(7,14)이 하느님의 덫에 걸려(3,5) 남부 왕국의 평온한 생활을 버리고 예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북부 왕국에서 불의를 고발하고 하느님을 대변하여 예언을 했다(1,1). 사자가 으르렁대기 시작했다(3,8). 이 사자는 불의한 체제를 아주 먼지로 만드는 주님이시다. 아모스는 불의를 고발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쫓겨나고 만다. 그러나 그에 앞서 베텔에서 왕의 뜻에 맞추어 경신례를 주관하던 사제 아마츠야 위에 떨어질 재앙을 예고한다(7,10-17).
왜 아모스의 말은 사람들에게 그렇듯 불편하기만 한가?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심판이 이방인 민족들에게만이 아니라 특히 선택된 백성에게도 내리리라고 예고하기 때문이다. 선택된 백성은 스스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방인들보다 더 나빴다(1,3―2,16). 그리고 아모스는 그저 막연하게 사회 불의를 고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고집이 센 자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점점 더 많은 재산을 쌓으면서 호화로운 집과 별장에서 살고(3,13-15; 6,1-7) 억압적인 체제를 지지하는 부자들(3,10), 온갖 사치와 호사를 다 부리면서 힘없는 사람들의 것을 빼앗으라고 남편을 졸라대는 부잣집 여인네들(4,2-3), 도둑질과 착취를 일삼으면서도 기도하러 성소에 다니고 십일조를 바치고 마음의 위안거리로 자선을 베푸는 정도에 그치는 자들(4,4-12; 5,21-27), 돈을 받고 재판을 하는 재판관들(5,10-13), 거리낌 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속여 먹는 장사꾼들(8,4-8)을 열거한다.
다섯 가지 환시에서, 아모스는 북부 왕국의 종말을 예고한다. 왜냐하면 그 왕궁의 상황을 하느님께서 참고 받아들이실 수 없기 때문이다(7,1-3; 7,4-6; 7,7-9; 8,1-3; 9,1-4).
현재의 상태에서, 아모스서는 희망의 말로 끝난다(9,11-15). 그러나 그로부터 2세기 뒤 바빌로니아에서 귀양살이하던 유다인들이 그런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따라서 귀양살이하는 고통 가운데서 자기네 죄가 씻어졌음을 깨달은 유다인들이 이 대목을 덧붙였을 것이다. -출처: 21세기 해설판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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