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다해) 루가 12,35-40; ’25/08/10

“깨어 있는 믿음, 준비된 마음, 그리고 말씀 안의 삶”

- 등촌3동 부주임 이민구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세 독서는 모두 한 가지 주제를 향해 나아갑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깨어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깨어 있음은 단순히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제1독서 지혜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해방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노예였고, 눈에 보이는 상황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지만, 하느님께서 “그 날이 온다”고 약속하시자, 마치 이미 해방된 사람처럼 준비했습니다. 희생 제물을 준비하고, 마음을 모으고, 하느님의 법에 동의하고, 성공과 위험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즉, 믿음은 ‘그 날이 오면 준비하겠다’가 아니라, ‘그 날이 올 것을 믿고 지금 준비하는 것’입니다.

제2독서 히브리서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만납니다. 하느님께서 “떠나라”고 하셨을 때,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길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우리라면 어떨까요? 내비게이션도 없고, 계약서도 없고, 오직 “나를 믿어라”는 한 마디만 들은 상황입니다. 아마 우리는 “주님, 일단 목적지 주소부터 알려주셔야죠”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떠났습니다. 사라도 나이도 많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지만, 약속하신 하느님을 “성실하신 분”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금 당장 손에 잡히지 않아도, 마치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살아내는 힘이 바로 믿음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고 하십니다. 허리에 띠를 매는 것은 언제든 움직일 준비를 하는 자세이고, 등불을 켜는 것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종이 깨어 있는 것을 주인이 보면, 오히려 주인이 띠를 매고 종들을 식탁에 앉히고 시중을 들 것이라는 겁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준비된 사람은 손님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가족처럼 대접받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깨어 있는 시간보다 졸고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을 잊고 살 때, 신앙은 ‘습관’이 되고, ‘의무’가 됩니다. 미사에 나와도 마음은 다른 데 가 있고, 복음을 들어도 “좋은 말씀” 하고 끝나버리죠. 깨어 있지 않으면, 주님이 오셔도 못 알아보고, 하느님의 손길이 내 삶에 닿아도 그냥 우연이라 생각해 버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성경이 주는 답은 분명합니다. 말씀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믿음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신앙은 근육과 같습니다. 자주 쓰지 않으면 금세 약해집니다.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하려면, 그 약속을 자주 들어야 하고, 되새겨야 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 일을 도와주는 것이 성서 못자리입니다.

많은 분들이 “나는 이미 세례받았고, 신앙생활 오래했으니 성경공부 안 해도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도 율법을 평생 들어온 사람들 중, 정작 하느님이 오셨을 때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모르면, 하느님을 보아도 못 보고, 들어도 못 듣게 됩니다. 성서 못자리는 단순한 성경 지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고, 과거 하느님의 역사를 보고, 오늘 내 삶 속 그분의 손길을 찾는 훈련이며, 복음을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위한 오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자리입니다.

저는 이걸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성서 못자리는 영혼의 충전소입니다.” 휴대폰도 충전 안 하면 꺼지듯이, 말씀을 듣지 않으면 신앙의 불도 꺼집니다.

‘성서 못자리’는 한국 천주교회가 마련한 가톨릭 평신도 성경 교육 과정입니다. ‘못자리’란 논에 벼 모를 키우는 모판을 뜻합니다. 모판에서 튼튼하게 자란 모가 논에 옮겨져 풍성한 열매를 맺듯, 성서 못자리는 우리 마음밭에 하느님의 말씀을 심고 키우는 자리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배우는 공부방이 아닙니다.성경 속 하느님의 약속과 구원 이야기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낼지를 배우고 나누는 신앙 여정입니다. 혼자 성경을 읽을 때는 놓치기 쉬운 역사적 배경과 교리적 의미를 배우며, 함께하는 ‘말씀 가족’ 안에서 믿음이 자라고 깊어집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을 믿고 해방의 날을 준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처럼 살았습니다. 복음의 종들은 주인이 언제 와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말씀 안에서 깨어 기다립시다. 그 준비는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말씀을 붙잡는 준비입니다.

성경은 미사의 독서와 복음을 이해하는 열쇠이며,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과 위로를 줍니다. 말씀을 가까이할수록 하느님의 뜻을 더 분명히 알고, 그분의 손길을 일상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제 그 말씀을 마음에 심고 키워, 가정과 일터, 세상 속에서 복음의 열매를 맺는 신앙인이 됩시다. 성서 못자리에서, 가정에서, 기도하는 자리에서, 날마다 하느님의 약속을 새기며 믿음의 등불을 켜둡시다. 그렇게 깨어 있는 사람을 주님께서 직접 맞아 주시고, 그분의 잔치에 앉혀 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