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다해) 요한 13, 31-33ㄱ.34-35; ’25/05/18

예전에 어느 한 분이 자기가 사업을 할 때, 자기 밑의 회계 담당 직원이 회사의 돈을 횡령하고 달아나 사업을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회계담당 직원이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그분은 천주교 신자이야기만 들으면 화를 내고 싫어했다고 합니다. 또 신자거니 하면서 믿고 돈을 맡겼다가 떼거나, 빚보증을 잘못 서서 손해를 보면, 신자들 사이에서 분란이 생겨나고, 영적인 교회 공동체가 물적인 세상 어둠 속에 갇힐 때마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엄밀한 의미에서, 금전 문제지 신앙의 문제가 아닌데도, 이런 일이 생기면 성당마저 안 나오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 한 분이 잘못하면, 전체 교회가 다 욕을 먹을 수 있습니다. 열 번 잘하다가도 한 번 실수하면, 그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게 되므로, 조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늘 깨어 준비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이왕이면 선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함으로써, 교회와 세상을 빛내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요한 13,32) 라고 하십니다. 평소에 이웃 사람들이 나를 믿고 의지할 정도로 살면서 선교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또 똑같이 어려움을 겪는 세상에서 나만 특별히 모범을 보이고 더 많이 희생을 봉헌하기 어려워 지쳐 쓰러지거나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살면서 좋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은데, 어떤 때는 여력이 안 되어서, 기회가 안 되어서, 망설이다가 놓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좋은 일은커녕 나쁜 일마저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인간적인 불가항력적인 벽을 느끼게 하는 상황과 처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비신자들이 끊임없이 교회를 두드리는 것은 참으로 성령의 도우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성 바오로는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로마 7,15.19-20) 그러면서 인간이 처한 연약하고 나약한 조건에 대해 한탄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24절)

그러면서 그러한 인간조건을 극복하리라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3-25) 그러한 희망은 바로 성령께서 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26-27절)

고통과 죄악은 세상에서 오는 것이지, 주 하느님께서 인간을 시험하시거나 괴롭히기 위해서 내리는 벌이 아니므로, 하느님께 책임을 돌리거나, 현세에서 내가 겪는 어려움으로 인하여 하느님을 원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현실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 부모님처럼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면서 괴로워하시고 가슴을 졸이며 안타까워 하십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실제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참 힘듭니다. 잘못 계산된 것 같고, 내가 겪어야 할 상황이 아닌 데, 나에게 잘못 배당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 한편 받아들이기도 싫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벗어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집안에서 겪는 어려움을 피해 밖으로 나가 활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밖에서 하는 활동이 바람을 쐬는 정도는 될 수 있을지언정, 내 문제의 해결이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 말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가서도 샌다.”라는 표현이 있듯이, 여기서 해결되지 않는 내 문제는 다른 곳에 가서도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내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고, 고치려고 노력하여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그렇게 자신을 마주 보고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을 둘러싼 주위의 여건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돌리고 탓을 하게 되면, 오히려 내 문제는 더욱더 나를 죄어오고, 짜증스럽게 하며, 그럴수록 점점 문제는 더 미궁으로 빠져들어가 버립니다. 그러다가는 자칫 자기 인생이 고립되기도 하고, 인생이 고달프다고 느껴지게 되고, 심지어는 지쳐 버리게도 됩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24절)

다행스럽게 봉사활동을 통해, 또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통해, 내가 내 문제를 새롭게 보게 되거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대신해서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떨쳐버리고 싶지만, 떨쳐버릴 수도 없고, 또 떨쳐지지도 않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피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또 돌아와, 결국은 내가 해결해야만 합니다. 어쩌면 인생은 무엇인가를 피함으로써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숙제인가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마치 어떤 때는 극복의 단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조차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에게 그렇게 녹녹하지도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힘겨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고 싶다고 말하기도 전에 눈을 뜨게 해 주고,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부모님이 계시고, 일가친척들, 이웃 친지들, 은인들, 후원자들, 내게 선한 영향을 끼친 많은 좋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내게 꼭 필요하고, 없어서 괜찮거나 무시할 수도 없는 대자연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되새길 때마다, 세상에는 나를 위협하고 어렵게 하는 갖가지 장애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끔찍이도 사랑해 주교 계시며, 주님 사랑 안에서 섭리와 안배를 이끌고 계시는구나!’ 하는 깨닫음을 얻게 되며, 이에 깊은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 5,8)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정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은 무시와 배반과 당했고 급기야는 사형까지 당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9-11)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려고 하셨지만,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가 22,42)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겪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셨지만, 현실을 통해 드러나는 아버지의 뜻에 충실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미움과 원망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셨지만,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복수하시지 않고, 그 죽음을 아버지께서 내려주신 사명으로 묵묵히 받아들이셨기에,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다시 얻어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게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그런 의미에서라면, 신앙생활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단순합니다.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 일 안 하고, 선한 마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여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이웃이 어려울 때 관심을 두고 함께 도와주고, 거기다 주님의 이름으로 희생까지 한다면, 우리는 신앙인의 도리를 다하게 됩니다.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은 용서입니다. 사랑하기에 용서하고 희생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용서와 사랑을 받았기에, 우리도 사랑합니다.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을 따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35절)

주님이 주신 계명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로 합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뜻 안에서 그 현실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기로 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19-21)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쉽사리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예수님의 단순한 진리의 말씀을 스스로 실현한 예수님을 본받아 따라 나갑시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를 휘감아 그 말씀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