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서와 지혜서

서 언

‘지혜문학서’란 구약성경 가운데 다섯 권, 잠언, 욥기, 집회서, 코헬렛, 지혜서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다섯 권에 시편과 아가라는 시집이 더해진다. 이 책들은 이스라엘의 지혜와 영성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안에서, 지혜는 지식이 모여 얻어진 문화가 아니다. 구체적인 생활 체험에 관한 묵상과 성철을 통하여 얻어진 상황 감각과 인식과 분별이다. 지혜는 실천으로 깨달아 얻은 어떤 것, 인간답게 사는 예술을 가르쳐 주는 어떤 것이다. 지혜문학서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실현하고 행복에 이르는 길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이 일상생활 가운데서 부딪치는 많은 문제로부터 솟아나오는 성찰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잠언과 집회서에서 발견하는 민간적인 성질의 지혜는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상황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도록 도와줄 문장과 짧은 구절을 모아 놓은 형태로 되어 있다. 이미 욥기, 코헬렛, 지혜서는 인생의 의미, 죽음, 정의, 사회생활, 악, 지혜의 본질 등 더욱 심각하고 총체적인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아가는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인간의 사랑이라는 더 기본이 되는 삶의 체험을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의 영성은 시편에 드러나 있다. 시편은 개인과 백성의 다양한 삶의 상황을 살펴보고 묵상하는 150편의 기도다. 시편은 우리가 기도할 때 배워야 할 참된 귀감이다.

지혜서는 백성의 공통적인 체험 역시 하느님께서 나타나고 당신 계획이 드러나는 자리라고 말한다. 즉 하느님은 백성의 체험을 통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지혜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일상생활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초대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체험과 역사체험을 잇는 법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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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참된 종교

서 언

욥기의 중심 주제는 악, 올바른 사람과 죄 없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 ‘욥의 인내심’이 아니다. 이 극작품의 저자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라는 종교의 가장 깊은 문제를 격정적으로 논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은 선을 선으로 그리고 악을 악으로 갚고 올바른 사람에게는 건강과 번영과 행복을 주고 불의한 사람에게는 불행과 고통으로 벌하신다는 ‘인과응보의 교리’를 통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그런 사고방식은 상거래 형태의 종교를 만들어 낼 위험이 있다. 상거래 형태의 종교에서는 인간이 자기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심지어 하느님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사고방식과는 반대로, 저자는 참된 종교는 믿음과 은총의 신비라고 말한다. 즉 인간이 자유롭게 무상으로(계산 없이)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넘겨주고, 잴 수 없는 신비이신 하느님도 무상으로(공으로) 마음을 기울여 인간과 친한 관계를 맺고 생명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아마 대부분 주전 6세기에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에 엮어졌을 것이다. 욥처럼, 유다의 백성은 가족, 재산, 제도, 자유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당시까지 통용되던 신학적 사고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하느님과 무상적인(공으로 주고받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하는 중대한 질문을 사탄이 던진다(참조. 1,9). 우리는 욥기 전체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답변을 내린다는 것은, 모순에 떨어지지 않고서는 백성이 처한 새로운 상황에 응답할 수 없는 인과응보 신학 전체를 뛰어넘는 것을 뜻한다. 백성은 새로운 체험을 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체험은 새로운 형태의 하느님관, 인간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고를 요구한다.

저자는 자기 의도를 이루기 위하여 인과응보에 관한 옛 전설을 이용한다(1,1―2,13; 42,7-17). 그러나 이 전설의 마지막 부분을 뒤로 미루는 대신(42,7-17),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없는 당시 신학의 모순을 보여 주는 일련의 논쟁을 펼친다(3,1―42,6). 인과응보 신학은 하느님의 정의를 보호하기 위하여 인간을 단죄하는 일 외에도, 인간의 정의를 보호하기 위하여 하느님을 단죄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이 딱한 처지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이 차원에서, 우리는 욥기가 결정적이고 보편적이라고 자부하던 신학 전체를 비판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인과응보 신학은 정말 하느님 체험 자체에 대한 걸림돌로 변할 수가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그러한 신학을 꾸짖는다. 즉 종교를 하느님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하느님 체험 자체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중요한 측면은 욥이 자기가 가난해지고 소외된 상태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온갖 설명을 넘어서는 체험은, 인간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 및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새로운 관계가 맺어지는 역사의 출발점이 된다. 욥기의 마지막 고백 -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42,5) - 은 이 책 전체가 다다르는 곳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인생을 하느님께서 나타나시는 자리,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자리로 바꾸어놓고 있다. 이 도착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욥기가 가난한 사람들만이 그런 하느님 체험을 할 수가 있고, 따라서 역사 속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선포할 수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만들어지는 관념의 감옥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 보이고 그들과 더불어 새로운 세계를 세워 가시는 삶과 역사의 짜임 안으로 들어가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하느님과 맺는 그런 연대는 도전으로 바뀐다. 즉 우리도 기꺼이 우리의 신학 전통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손잡고 그들과 더불어 하느님 체험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출처: 21세기 해설판 성경-